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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Last Tango In Paris)

by 일요일 아침 2024. 4. 15.

 

 

줄거리

 

폴은 부인(로자)이 자살 한 뒤 새로운 집을 알아본다. 잔느는 톰(약혼자)과 결혼생활을 할 집을 찾는다. 폴과 잔느는 같은 방(여관 같은 방)을 보고 들어가게 되고,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관계를 맺는다. 집을 나와서는 둘은 다시금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 인사도 나누지 않고 헤어진다. 폴은 부인이 죽은 여관으로 가고, 잔느는 톰을 만난다. 영화감독인 톰은 잔느와의 사랑을 영화로 만들고자 한다.

잔느는 또 다시 폴을 만난 방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폴과 관계를 가진다. 잔느는 폴의 이름을 물어보고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 하지만, 폴은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해주지도 않고, 그녀의 이름을 듣는 것을 강하게 거부한다.

폴은 딸의 사망소식을 듣고 온 장모를 만나고 장모는 딸의 자살이유를 묻는다. 폴은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른다며 장모에게 크게 화를 낸다. 잔느는 톰과 함께 자신의 어린 시절에 관해 영화를 찍는다. 그리고 폴과 만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하지만, 폴은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잔느는 폴과 톰 사이에서 방황을 거듭한다. 그녀는 또다시 폴을 만나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가지만, 폴이 그 집을 떠난 후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톰에게 전화해 함께 살집을 찾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톰은 집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잔느가 방에서 나와 길을 가던 중 폴이 나타난다. 그는 그녀를 탱고 경연이 벌어지고 있는 술집으로 데려가고, 잔느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로 경연장 안으로 들어가 '둘 만의 탱고'를 추며 경연을 망쳐 놓는다. 잔느는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 그에게서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폴은 그녀를 집까지 쫓아가고, 잔느는 결국 그를 총으로 쏜다. 폴은 잔느의 집 테라스에서 움츠린 자세로 죽고, 잔느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그를 몰라. 길에서 나를 쫓아왔어 강간하려고, 그는 정신이상자야. 나는 그의 이름도 몰라.”라고 말한다.

 

인물 분석 및 감상

 

1. 폴

폴은 자신의 아내(로자)가 자신 몰래 외도를 했다는 사실과, 자신에게 자살의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폴은 그 후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에 회의를 가지며, 결혼과 같은 ‘제도’를 부정한다. 여기서 제도는 인간의 본능을 억제 시키는 역할을 포함한다. 이러한 폴의 성향은 그와 장모의

대화와 그가 부인의 시체 옆에서 하는 말에서 알 수 있다.

 

장모: ...하지만, 기독교식 장례식을 치르려면 목사가 필요해.

폴 : 안돼!!! 로자는 믿음이 없었어요. 신을 믿지 않았다고요.

장모: ...이보게, 내 딸아이 아닌가...왜 자살을 한건가?

폴 : 왜? 그 애가 왜 자살을 한 건가? 왜냐구요? 모르죠. 저도 모르죠.

 

(아내의 시체 옆에서)

폴: ...남편이란 200년을 살아도 자기 아내를 안다고 할 수 없어. 우주의 진리라면 몰라도. 어쩌면...그치만 당신이라는 여자는 모르겠어. 도대체 당신은 누구였지? ...당신의 소위, 손님들 말이야. 그러고 보니 나도 손님이야 그치? 당신의 손님. 5년 동안 나는 남편이 아니라 여관 손님이었어...당신은 거리의 창녀보다 못해. 왜냐구? 날 속였으니까. 날 속였지. 난 당신을 믿었는데, 알면서도 속였어.

 

또한 폴의 이러한 성향은 잔느와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폴은 잔느에 대해 어떠한 것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잔느는 그에게 단지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상일 뿐이다. 그는 그녀와 관계를 맺는 이유를 ‘세면대가 아름다워서’ 라고 말한다. 

 

잔느: 호칭을 뭐라고 해야 해요?

폴 : 나는 이름이 없어.

잔느: 내 이름이 궁금하지 않아요?

폴 : 아니!!! 말하지 마. 안 궁금해. 넌 이름이 없어. 나도 이름이 없어. 여기에 이름 따윈 없어. 어떤 이름도 없어.

 

폴 : ...그럴지도...어쨌든 너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아. 어디 사는지, 어디 출신인지, 알고 싶지 않아. 알겠어?... 우린 여기서 만나고, 여기서 바깥세상일은 제쳐둬.

 

하지만, 이러한 폴의 성향은 변하게 되는데, 나는 그 이유가 로자의 친구와 그녀가 데려온 남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로자의 친구가 데려온 남자는 로자의 친구를 아픈 아내 대신 성적 욕구를 충족 시켜줄 대상으로만 생각하였으며, 그녀를 ‘추하다’고 말하였다. 아마 폴은 그런 그가 잔느를 대하는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는 잔느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를 ‘방’이 아닌 ‘밖’에서 만나게 된다. 그는 잔느에게 구애를 하며, 함께 살자고 말한다. 하지만, 잔느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랑을 말하며, “너의 이름을 알고 싶어.”라고 말하는 폴을 총으로 쏘아 죽이게 된다. 폴은 마지막에 자궁속의 태아와 같은 자세로 죽는데, 혹자는 이를두고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고독한 존재가 되어버린 폴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2. 잔느

 

잔느는 처음부터 폴에게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그러한 행위는 마치 아이가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잔느는 사랑과 결혼을 별개라고 생각한다. 이는 그녀가 드레스 숍에서 약혼자 톰과 나누는 대화에서 알 수 있다. 그녀는 사랑을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라고 말하며, 온전한 남자와 여자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반면, 결혼은 ‘통속’이라고 말하며, 이는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결혼은 제도이므로 수리공이 자동차를 수리하듯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잔느: ...결혼, 통속적인 결혼.

톰: 결혼이 불행해지면?

잔느: 차처럼 수리해야지. 두 부부는 작업복을 입고 수리공이 되어 차를 수리하는 거야.

톰: ...사랑은? 사랑도 통속이야?

잔느: 아니, 사랑은 아니야. 수리공이 은밀한 장소로 가서 작업복을 벗고, 다시 남자와 여자가 돼서 사랑을 하는 거지.

 

하지만, 그녀는 폴이 자신을 사랑하며, 같이 살자고 말할 때 폴을 거부한다. 잔느는 폴과 사랑을 하길 원한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통속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결국 그녀는 폴을 죽인다. 마지막에 잔느는 “나는 그를 몰라. 거리에서 날 쫒아 왔어, 날 강간하려고. 그는 정신이상자야. 나는 그의 이름도 몰라”라고 말한다. 이는 영화의 모든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인 듯하다.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안다’는 것의 부정, 그로 인해 인간은 고독으로 빠져든다는 의미 인것 같다.

 

3. 톰

 

톰은 잔느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찍었다. 그는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은 알고 싶어 하였고, 그것을 영화에 담고자 하였다. 하지만, 톰은 잔느를 사랑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잔느를 결혼의 상대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와의 사랑은 영화에 담기위한 하나의 ‘위장’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그가 잔느에게 청혼을 할 때 그녀에게 씌운 구명튜브가 물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잔느에게 어른스럽게 행동하자고 말하며, 그것이 행동이나 언어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본능에 충실한 아이가 아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어른이며, 자신은 그런 어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고로 결혼은 어른들이 하는 것이며, 이 또한 사랑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4. 감상

 

1) ‘안다’는 것

 

폴은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어둠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타인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는 타인의 얼굴을 볼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타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 할 수도 없다. 즉, 타인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한 인간이 자신과 다른 인간을 ‘안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 한 일일지도 모른다. 폴이 5년 동안 함께 산 자신의 부인이 왜 죽었는지 조차 모르는 것처럼, 톰이 잔느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고 하고 그것을 영화로 남기지만 잔느와 폴과의 관계를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2) 본능과 제도

 

영화에서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사랑이라는 본능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둘은 별개의 것으로 간주되며, 제도 속에서는 온전한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제도는 수리공의 옷을 입는 것과 같고, 사랑은 그 옷을 벗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사랑과 결혼의 결합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사랑은 인간의 본능이자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관계는 어떠한 제도가 필요 하다. 그러한 제도가 없는 사랑은 어쩌면 동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즉, 이름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제도의 옷을 벗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옷을 벗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서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은 본능을 비롯하여 신뢰, 책임, 그것을 지킬 용기 까지 포함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폴을 모른다는 잔느의 마지막 대사에서 씁쓸함과 허무함이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본능만 있는 사랑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3) 마지막 탱고

 

감독은 왜 영화를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라고 했을까? 폴은 경연장에서 탱고를 추는 사람들을 보며 “탱고는 의식이야.”라고 말한다. 내 생각으로는 그것은 경연을 위해 규칙, 제도를 따르며 춤을 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감정 없이 춤을 추는 꼭두각시처럼 보인다. 마치 하나의 의식을 치루는 듯하다. 그것은 본능이 배제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잔느와 폴이 경연장 안에 들어가 춘 춤은 그러한 제도를 거부하는 것, 본능이었다. 그 후 그들의 제도를 거부하는 관계는 폴로 인해 끝나게 된다. 그것이 폴과 잔느에게는 마지막 탱고였다.